조은지 개인전
《文魚: 글자 변신 물고기》
- 일시: 2024. 12. 6. (금) – 12. 31. (화)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1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Cho Eunji solo exhibition
Letter-Fish: Morphing of Octopus
- Date : 6. Dec. 2024 – 31.Dec. 2024
- Venue : ARTSPACE BOAN 1
- Hours : 12PM – 6PM
- Closed on Mondays
- Free Admission
크레딧
■ 프로듀서: 장서윤
■ 그래픽 디자인: 김성렬(반 스튜디오)
■ 사진: 홍철기
■ 공간 디자인: 조재홍, 신익균
■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4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
※ 전시와 연계한 아티스트북 『文魚: 글자 변신 물고기』이 전시 기간 내 출간될 예정입니다.
Credit
■ Producer: Chang Seoyoun
■ Graphic Design: Kim Sungyeol (BAAN Studio)
■ Photographer: Hong Cheolki
■ Space Design: Jo Jaehong, Shin Ikkyun
■ Sponsored by Seoul Metropolitan Cit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 The artist’s book 文魚: The Shape-Shifting Fish of Letters, produced as part of the exhibition, is scheduled to be published during the exhibition period.
나는 이 먹물을 가진 물고기(文魚, octopus)와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이 중심이 된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뒤흔들어야 할 새로운 존재 양태의 언어 출현에 대해 상상한다. 이 새로운 존재 양태의 언어란 완벽한 언어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실패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오염되고 혼종적인, 불법의 언어이다.1)
한때 조은지 작가는 말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항상 말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전달하는 작가지만, 신중함 속에 묵직한 의미를 담아내는 그가 말을 잃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게 하는 표현이었다. 말. 언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주는 가장 두터운 경계. 아마도 조은지 작가는 말과 언어라는 경계 앞에서 한발 물러섰던 것 같다. 퍼포먼스와 시가 주축이 된 작업을 『행동하는 시』(2011)로 엮을 만큼 언어와 시를 중요한 작업 매체로 사용하는 작가였기에, 자기 안에서 언어가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에 그 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가장 당황했을 것이다. 그 주저함, 머뭇거리며 망설이면서도 자신이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수행하듯 작업을 해 나가는 작가의 태도를 바라본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기반을 두는 능동성이 아닌 주저함의 수동성에 조은지 작업의 핵심이 있음을 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드로잉은 이처럼 수행하듯 기록한 작가의 예술적 태도가 집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드로잉에서는 작가가 한때 잃어버렸던 언어가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언어들은 과거 그의 작업에 등장한 것들과는 형태적인 부분에서나 의미적인 부분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언어들은 독해 불가능의 언어이자 언어 이전의 언어에 가깝다. 인간의 인식 체계로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이 언어들은 자신이 언어이기를 오히려 거부한다. 작가가 작업에 다시 텍스트를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기존 언어 체계 안에서 읽히고 해석되는 언어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존재 양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탈출-진흙 시〉(2008), 〈땅-흙이 말했다〉(2011), 〈文魚의 무늬는 文이다〉(2021) 같은 작품에서 벽면에 던진 흙의 흔적이 문어가 뿜어내는 먹의 흔적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에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언어적 능력일 수 있으며, 인간으로부터 누락된 또 다른 언어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러한 새로운 존재 양태의 언어 안에서는 비단 인간종뿐만 아니라 인간이 배제해 온 동물의 언어와 조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창발 되며,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이성과 지성의 지배를 벗어난 상상력과 유희의 공간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불법의 언어는 종을 뛰어넘는 보편의 언어이자 해방의 언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문어’(文魚)는 드로잉 작업에서 조은지 작가의 중요한 협력자가 된다. 작가는 〈문어적 황홀경〉(2018), 〈문어의 노래〉(2018), 〈문어요가 퍼포먼스〉(2019), 〈나의 쌍둥이 문어 Octo-8을 위한 노래〉(2020) 등 최근 일련의 작업에서 예술적 탐구 대상으로 문어에 천착해 왔다. 인간과 다른 지각 체계를 가지고 있는 문어에게서 특별한 능력2)을 통찰했던 작가는, 여덟 개의 촉수로 사물을 인지하는 문어의 신체 구조를 통해 자아가 하나로 고정되어 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다중 자아의 가능성을 살핀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쌍둥이 문어 형제자매를 가지게 된다는 인도네시아의 신화는 이러한 작가의 사유가 허무맹랑한 공상만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제 작가는 먹물(文)을 가진 이 생명체와 언어를 통해 조우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시도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은 물론 자아와 타자를 구분 짓는 견고한 경계를 유희하듯 넘나든다. 이에 작가는 한글 음소 문자와 영어 알파벳의 먹글씨, 혹은 커피 자국 같은 생활의 흔적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의지를 배제한 채 무의식에 가까운 형상을 그려나간 후에야 무엇을 그린 것인지를 나중에 알아차리게 되는 ‘귀납적 드로잉’의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드로잉의 끝에 그가 발견한 형상은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파열되는 지점에서 다른 존재와 만났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변신’은 중요하다. 문어의 몸짓을 표현한 요가 자세를 따라 하며 의식의 확장을 탐구했던 〈문어요가 퍼포먼스〉에서처럼, 검문소를 빠져나오기 위해 흙을 육면체로 만들어 탈출시켰던 〈탈출_진흙 시〉에서처럼, 변신은 그 경계와 실체를 흐릿하게 만들며 주체와 타자,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이분법적 구조와는 다른 존재의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또한 너일 수 있는 상태, 나는 또한 내가 아닐 수 있는 상태를 말이다. 8채널 영상 설치 작품 〈조은지와 조은지의 대화〉(2024)에서 작가는 “문어의 다리, 즉 촉수에 붙어 앉아서 다른 한쪽 다리에 붙어 앉아 있는 존재와 시소 놀이”3)를 하듯 2004년의 조은지라는 다중 자아를 등장시켜 대화를 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시도한다. 20년의 세월은 물론 블랙홀과 웜홀을 넘나들며 변신을 시도하는 작가의 몸과 언어는 이제 혼종으로 거듭남으로써 다양한 존재 양태가 공존하는 새로운 지구로 우리를 도달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변신이 절대 통일된 주체의 능동성에서 나오는 적극적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주체가 완벽한 하나의 주체로 존재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는 주저함, 그 수동적 움직임에 가깝다. 주체가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이미 주체 내부에 기입되어 있는 타자의 요구로 인해 주체는 주저하고, 주체는 응답한다. 그 주저함의 자리가 바로 타자를 불러들이는 공간이며, 혼종과 변신의 새로운 존재 양태의 자리일 것이다.
글 장서윤(프로듀서)
1) 조은지, 「文魚의 무늬는 文이다」 작가노트.
2) 전통적으로 인지 연구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에 집중해 진행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까마귀 같은 척추동물은 물론 문어와 같은 무척추동물에 대한 지능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 심리학과의 알렉산드라 슈넬(Alexandra K. Schnell)을 비롯한 여러 학자는 문어처럼 복잡한 인지 능력을 가진 두족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인지 진화에 관한, 사실에 근본적으로 도전한다고 논문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동신, 『포스트 휴머니즘의 세 흐름』(서울: 갈무리, 2022), 110-111 참고. 한편, 최근 옥스퍼드 대학교 팀 콜슨(Tim Coulson)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높은 지능과 소통 능력을 지닌 문어가 인류 멸종 이후 지구를 지배하고 새로운 문명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Brooke Kato, “This captivating sea creature could dominate Earth if humans become extinct: expert,” New York Post, November 15, 2024, https://nypost.com/2024/11/15/science/this-captivating-sea-creature-could-dominate-earth-if-humans-become-extinct-expert/
3) 조은지, 「文魚의 무늬는 文이다」 작가노트.
[ARTSPACE BOAN 1] 조은지 개인전 《文魚: 글자 변신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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