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하반기 기획전시
오리너구리와 유니콘

  • 참여작가: 김효진, 백정기, 에린 존슨, 정혜정
  • 일시 : 2024.9.6 – 2024.10.6
  • 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 1,2,3
  • 운영시간 : 12:00 – 18:00
  •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BOAN1942
Platypuses and Unicorns

  • Artists: Hyojin Kim, Jungki Beak, Erin Johnson, Haejung Jung
  • Date: 2024.5.24 – 2024.6.22
  • Venue: Artspace Boan 1,2,3
  • Hours: Tue-Sun  12:00 – 18:00
  • Closed on Mondays
  • Free Admission

크래딧


  • 디렉터: 최성우
  • 기획: 박승연, 최정욱
  •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손효진
  • 그래픽 디자인: 파이카
  • 공간 디자인 및 조성: 손정민
  • 영상장비: 시스미디어
  • 운송 및 작품 설치: 나라작품운송
  • 홍보물 제작 설치: 네모공간
  • 사진: 고정균
  • 주최 및 주관: 통의동 보안여관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Director: Sungwoo Choi
  • Curators: Seungyeon Park, Jeonguk Choi
  • Assistant Curator: Hyojin Son
  • Graphic Design: Paika
  • Installation Support: Son Jungmin
  • Media Support: JLV
  • Shipping Support: Nara Art
  • Contact Paper Installation: Nemo Space
  • Photography: Goh Jeong Kyun
  • Hosted by BOAN1942
  • Support: Art Council Korea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의 기획전시 《오리너구리와 유니콘》은 인간의 분류 체계에 의구심을 유발하는 생명에 주의를 기울인다. 종과 종, 암과 수 등 인간이 생명 사이를 가로질러 세운 뻣뻣한 범주에 변화를 촉구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번 전시는 분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틈새를 파고들어 그 너머의 존재와 조우함으로써 접촉과 연결을 기반으로 한 유연한 체계를 그려보고자 한다.

인류의 먼 조상이 동굴 벽에 그렸고 성경 속 아담이 이름 지었던 생물들은 분류학의 등장 이후 광범위한 관찰을 거쳐 종의 범주들로 약방의 서랍처럼 정리되었다. 이러한 체계 아래 영원불변할 듯 그려진 생물종들은 찰스 다윈을 통해 나무의 형상으로 뿌리내려 끊임없이 갈라져 뻗어나가고 때때로 절멸하여 부러지는 수많은 잔가지를 갖게 되었다. 이어 ‘카오스’라는 이름으로 묶여 배제되었던 아주 작은 생명의 단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거대한 나무의 밑동은 고균, 세균, 진핵생물이라는 단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다. 최근의 연구는 종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는 유전자 이동에 주목하며 나무의 도상 자체를 질문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분류 체계는 다양한 존재를 마주치며 조정을 거듭하는 해체와 재구축의 과정이다.

인간이 생물 간 차이를 인식하여 구별하는 감각은 분명히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 감각은 종종 인간의 불완전한 범주와 양식에 생명을 ‘고정’시키려는 태도로 변해 그 역동성과 가변성을 간과하게 한다. 부실하게 세워진 위계질서 속에서 일부 존재는 절멸로 추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류의 경계가 생명의 다양성에 어떤 층위를 부여하는지, 어떤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네 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생명과의 조우를 통해 인간이 생명을 범주화하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효진 작가는 식물, 동물 등의 정적인 분류가 간과하는 역동적인 생존의 몸짓을 화폭에 담아낸다. 작가는 생명이 스스로를 보존하는 다양한 방식의 접점에 주목하여 기존의 위계를 벗어난 상상의 생태계를 그린다. 정혜정 작가는 안과 밖을 뒤섞는 따개비를 ‘통로’로 삼아 그가 다른 몸에 붙어 표류하며 연결하는 여러 생태의 시공간을 소환하고 있다. 전시장에 펼쳐진 흔적들은 ‘따개비’로 분류된 몸 너머로 끈적하게 얽힌 세계를 오롯이 만나기 위한 초석이 된다. 백정기 작가는 여러 생물종들을 하나의 물로써 호명하여 종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을 짚고 있다. 수십 개의 이름들을 투과하여 움직이는 물은 생명이 몸의 경계 너머로 흐르고 순환하고 있음을 감각하게 한다. 에린 존슨 작가는 성적 표현이 유동적인 식물을 연구하는 장면에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그녀의 동성 연인 도로시 프리맨과 주고받은 러브레터를 덧입혔다. 개체마다 생식 방법이 달라 쉽게 분류하거나 결론지을 수 없는 식물, 이러한 식물을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학자들, 죽음을 앞둔 생물학자의 후회어린 사랑의 말들이 뒤섞여 ‘이름 없음’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참여작가들은 분류의 경계에서 연결로의 전환점을 포착하고 있다.

생태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은 생명을 분류하는 “경계의 담장은 고어텍스나 성긴 섬유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말한다.1) 우리는 인간이 세운 경계가 두터운 벽이 아니라 유연한 ‘막’임을 인지하고 그 막을 액체처럼 침투함으로써 서로를 만나고 어우러진다. 존재의 분류보다는 알아보고 마주함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소속과 배제로부터 기인한 상실과 갱신이 아닌 공존을 바라볼 수 있다. 이로써 오래된 나무는 거미줄로 뒤덮이고, 나와 너는 난잡하게 뒤얽힌다. 생명은 이 거미줄을 오가며 서로에게 가닿는 움직임이다.

1) 데이비드 쾀멘, 『진화를 묻다』,  이미경, 김태완 옮김, 프리렉, 2020, 357쪽

참여작가 소개

김효진 Hyojin Kim


김효진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선 대안적인 생태계를 회화 매체를 통해 탐구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일상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기 보존 방식’의 유사성에 대한 고민과 생존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비롯한 변이의 생태계를 그리고 있다. 돌, 나무, 풀들과 같이 정적으로 여겨졌던 존재들은 화면 속에서 다채로운 색채와 운동성을 가지며 서로 얽히고 연결된다. 화면 속 경계의 생물들은 모순된 공존을 수용하고, 여러 폭의 그림으로 확장되어 삶을 이어나간다.

백정기 Jungki Beak


백정기는 과거부터 미래를 향한 인류의 환경에 대한 태도를 탐구하고, 자연환경, 미신으로 일컬어지는 옛 문화 등을 지금의 과학기술 및 철학과 연관시키는 작업을 해 왔다. 작가의 작업실은 마치 과학자의 실험실, 혹은 잘 정리된 소규모 공장과 같다. 기우제를 준비하는 동서양의 샤머니즘에 대해 연구하고, 인간과 믿음과 그것의 주술적인 힘,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에너지 흐름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등 작가는 과학,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의 관계, 에너지의 발생과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을 다룬다.

에린 존슨 Erin Johnson


에린 존슨은 집단성, 비동의, 퀴어 정체성의 개념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학을 비롯한 범주화하는 시스템이 객관적이고 무결하다는 생각 – 특정한 생명이 다른 것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시스템과 사회에 대한 면역 – 을 파고들며, 그 위에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 백인우월주의를 담고 있는 역사를 차분하게 교차시킨다. 집단적인 ‘함께함’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떠해야 함을 지시하지 않으며, 단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친밀하게 연결된 몸들을 보여줌으로써 공동의 경험을 환기시킨다. 대상을 느슨하게 붙잡고, 일시적으로 모이게 하며, 다시 유유히 흘러나갈 수 있도록 하는 작품들은 마치 ‘다공성 표피’와도 같다.

정혜정 Haejung Jung


정혜정은 익숙했던 것의 틈과 균열을 발견하고 기존세계의 법칙을 뒤흔드는 작업을 한다. 우리를 둘러싼 가시화 되지 않았던 시스템에 질문을 하고, 다양한 타자의 ‘되기’와 경계 허물기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작가는 자연과 미디어, 인간과 비인간, 유기물과 무기물 같이 분리되어 온 개념들을 횡단하며, 다종다양한 세계의 상호작용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주체들을 사변적 우화의 방법으로 작품에 끌어들인다. 최근에는 가상 경험의 기술을 이용해 연결의 물질로서의 ‘물’과 ‘액체성’을 가시화하며, 생태학과 미디어아트의 교차점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