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현 개인전

《젖은 초록의 자국》

  • 일시: 2024. 6. 28. (금) – 7. 21. (일)
  • 장소: 아트스페이스 보안 1
  • 운영시간: 12:00 –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오프닝: 6월 28일 (금) 17:00-19:00

Jahyun Oh solo exhibition

Wet Turquoise Stain

  • Date : 28. Jun. 2024 – 21. Jul. 2024
  • Venue : ARTSPACE BOAN 1
  • Hours : 12PM – 6PM
  • Closed on Mondays
  • Free Admission

Credit

2024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

  • 글: 김지연 Jiyeon Kim @paradisegreen_
  • 그래픽 디자인: 박채희 Chaehee Park @chae.hee.park
  • 사진: 양이언 YANG IAN @photolabor_
  • 주최, 주관: 오자현 Jahyun Oh @ohja_a
  •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아트스페이스 보안 1에서 오자현 개인전 《젖은 초록의 자국》을 전시합니다. 

전시 《젖은 초록의 자국》은 오자현이 직접 쓴 소설 아보카도 3부작과 신작 「함정소설」(2024)과 시리즈 영상, 회화를 함께 전시합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소설과 회화, 영상을 겹쳐보며 이야기의 이면을 파헤치려는 독자 혹은 관람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간을 관통하는 어떤 ‘분위기’만 남는 전시는 기억의 불안정성과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개인의 무기력함을 암시합니다.

구작과 신작, 사운드까지 함께 전시합니다. 축축한 계절 가벼운 발걸음 해주세요.

‘폭망’의 뉘앙스 속에서

이 수상한 초록색 이야기의 시작은 아보카도였다. 풍부한 단백질과 비타민, 건강한 지방이 포함된 슈퍼푸드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주요 재배지인 멕시코에서는 현지인의 주 수입원으로 ‘그린골드’라 불리는 아보카도. 풍요로운 이미지로 보이지만 사실 환경오염의 주범이자 범죄의 도구다. 건강한 음식을 찾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시림을 개간하고, 아보카도 1알을 키우는 데에 320리터의 물을 써대는 것은 물론, 멕시코 갱단이 농장을 차지하고 농민들을 착취한다. 이 초록색 열매 하나에 모순된 진실과 서로 다른 입장이 수없이 얽혀 있다.

아보카도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숲이 한 뼘씩 사라진다.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다. 경제학자도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지 않나. 우리의 세계는 놀라우리만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iaud는 이러한 세계의 형태를 ‘주름’이라고 표현한다.1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하고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졌다. 마치 지구를 접어 주름을 만든 듯, 멀리 떨어진 것들이 서로 맞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빠르게 접히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먼 입장 차이가 금방 좁혀지지는 않는다.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진실이 뒤엉킨다. 오자현은 그런 뒤엉킨 세계를 다룬다. 전작에서 아보카도를 모티브로 인간 심리와 삶의 모순을 다룬 이야기를 구성하며 ‘아보카도 3부작’을 완성하였고, 이번 전시 《젖은 초록의 자국》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함정 소설」을 선보인다. 전작에서도 그러했듯이 직접 쓴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영상과 회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서서히 멍드는

「함정 소설」의 주인공 진우의 삶은 제목처럼 점점 함정으로 빠져든다. 동경하던 형은 그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갑자기 사라진 형을 죽였다는 의심까지 받는다. 경찰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찾아온다.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했는데, 그게 실제인지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주름이 접히는 사이에 멀었던 서사가 서로 가까워지고 각자의 진실이 중첩된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실제 기억과 상상, 타인의 진술까지 섞이며 진우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소설과 영상, 회화를 넘나들며 그의 서사를 쫓는 우리 또한 끝까지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한쪽이 가려진 진실로 가득 차 있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흩어진 파편뿐이다. 가진 것을 전부 모아도 하나의 온전한 장면을 완성할 수 없다. 편향된 조각들을 모아 서사를 만들고 그 위로 시간이 퇴적하면 진실은 점점 흐려지고 불완전한 기억은 강화된다. 돌아보면 그것이 진실인 것만 같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이렇게 개인의 삶에 등장한 모순을 허구의 이야기로 다루며, 그 아래에 현실 세계의 모순을 슬며시 깔아 둔다. 복잡한 사회 구조와 역학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서 있는 곳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한 상태로 각자의 퍼즐 조각만 손에 든 채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면 우리는 영영 가운데에서 만날 수 없다. ‘아보카도 3부작’에서 인물들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싸우는 이유도,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기후 위기 같은 거대한 문제를 앞에 두고 결론 없이 다투기만 하는 이유도 같다. 어느 한쪽도 온전한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고, 동시에 모두가 억울하다. 서로 평행한 입장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그 틈새로 끊임없이 함정이 솟아난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어딘가에 한쪽 발이 빠지고 자꾸만 고꾸라진다. 시퍼렇게 멍들어가는 무릎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생은 점점 망해가는 것 같다.

망하는 건 우리 삶뿐만이 아니다. 숲이 사라지고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내리면서 지구도 망해가고 있다. 진우는 뉴욕 어학연수 중 기록적인 폭우로 강남에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본다. 그가 남의 일처럼 치부한 홍수는 사실 주말마다 보던 영화 속 좀비보다 그에게 더 가까운 현실이다. 물론 그가 정말 뉴욕에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좀비 영화만 봤는데, 거기가 뉴욕인지 서울인지 알게 무언가.

그런 진우가 다단계 회사에 취직해서 팔기 시작한 핑크색 돌고래 장난감은 일그러져가는 세계의 징후다. 공들여 구현한 ‘싼 티 나지 않는 맑은 핑크색’은 진우가 믿는 진실들처럼 언뜻 멀쩡해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허술하고 부조리하기 그지없다. 싼 티 나는 홈쇼핑 광고 영상을 보고도 비싼 값에 돌고래 장난감을 구매해 실제 물고기 대신 키우는 사람들처럼. 일련의 상황에 ‘폭망’2 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징후들

변화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지각변동이 일어나듯, 아주 작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다가 마침내 아귀가 맞아떨어지면 큰 폭발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미리 분위기를 읽고 뉘앙스를 눈치채야 한다.

‘뉘앙스 nuance’의 사전적 의미는 ‘소리, 색깔, 단어나 문장의 의미에서 나타나게 되는 다양한 차이’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는 뉘앙스가 개별성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말하며, 구름이나 날씨와 연관짓는다. 하늘의 구름은 습도나 바람, 햇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색감과 분위기가 나타나는데, 이 작은 차이들이 모여 ‘현재 날씨’를 이룬다. 이 개별성은 매번 다르고 무엇과도 환원할 수 없는 우리의 삶과도 같다. 그러므로 뉘앙스를 파악하는 것은 생의 감각과 실존의 감정을 느끼는 일이다.3

오자현은 명확한 진실을 관객의 손에 쥐여 주는 대신, 곳곳에 징후들을 심고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전체의 분위기를 조율한다. ‘분위기’를 일종의 매체로 활용하는 것이다. 관객은 탐정이 된 듯한 기분으로 전시장 안을 탐색하며 작가가 심어둔 징후를 발견한다. 작은 단서들이 모여 뉘앙스를 형성한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견고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뒤틀려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림 속 건축물처럼, 우리가 아는 진실 또한 그러하다.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작가가 의도한 뉘앙스를 눈치채더라도 여전히 온전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기 인생에 한 발만 담그고 어느 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태도로 슬쩍 물러서는 진우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 불투명하고 부조리한 것이 우리의 세계이고, 우리 모두 진우 같은 태도를 한 조각쯤은 가지고 있다. 나 또한 진우처럼 망하기 십상이라고 생각하자 한없이 불안해진다. 불안을 거두고 삶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오자현은 꾸준하게도 ‘다 같이 망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살 거라면 다 망해버리라는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강한 부정은 긍정과도 같다. 긍정은 좋은 면만 선택적으로 취하며 안주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용기다.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의 처음에 선다. 이미 ‘폭망’의 뉘앙스는 시작되었다. 혼란스럽고 불안한가. 또 나만 억울한가. 이대로 있다간 아무래도 망할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가만히 있을 텐가.

김지연(미술비평) bloom_ing@naver.com


1 니콜라 부리오, 『플래닛 B: 기후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 , 이안북스, 2023